235% 달성
김지수가 유일하게 받고 싶은 선물 !
양력 10월 23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만 26년 가까이를 살아오면서, 생일이란 이벤트가 이리도 기대되지 않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나는 생일과 같은 기념일을 챙기는 것을 몹시 즐기는 성격이다. 일 년에 고작 하루인 생일로는 성에 차지 않아 태어난 날을 디데이 어플에 저장하고 100일 단위로 스스로를 축하하던 때가 있었다. —기념일이야 남자친구와 챙기면 되겠으나 내 대부분의 삶에서 연애는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창한 것을 한 건 아니지만 케이크를 사고, 친구들과 밥을 먹거나 스스로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했다. 100일, 그러니까 세 달 조금 넘는 날을 매번 기억하는 것은 무리이므로, 개중에는 몇 번을 놓친 적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 내가 챙긴 것은 9100일이었다. 그날 나는 바지락 술찜을 만들었다. 열심히 해감했는데 바지락에서는 모래알이 씹혔다. 스타벅스에서 파는 조그만 카스텔라에 9100이라는 조금은 조잡해 보이는 숫자 초도 꽂았다. 그리고 대선을 팔지 않는 삭막한 도시에서 아쉬운 대로 처음처럼이라도 사서, 혼자만의 취중진담을 나누었다. 이날을 기록하며 블로그에서 나는, ‘지수야, 난 네가 밉지만 또 가엽고 좋아. 앞으로도 죽지 말고 오래 함께 하자.’라는 글을 적었다. 이때는 대략 지금으로부터 1년이 더 넘은 과거이다. 2022년도 하반기는 한창 날 미워할 시기였는데, 어찌저찌 죽지 않고 살았다.
요즘 나는 나를 돌보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 밥을 직접 지어먹고, 집을 청소하고, 글을 쓰고 읽는 것이 버거웠다. 그래서 어질러진 집 안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는 내가 너무 미워 침대에 누워 엉엉 울기도 했다. 작년의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했다. ‘한때 나는 넘칠 것 같이 다양한 감정과 욕구가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텅 비어있기만 하다.’지금은 알맹이 지수가 힘을 내서 그 상태에서 다소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욕구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이전보다 침체된 상태로 삶을 꾸려나가기에, 생일이란 이벤트를 요란스럽게 챙기기도 힘들고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생일 때마다 친구들에게 오는 연락이 참 좋았다. 생일이란 좋은 구실이었다. 나 역시 너무 멀어진 까닭에 안부조차 묻기 새삼스러운 이들에게도, 생일이라는 핑계로 오랜만의 인사를 무색하지 않게 전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말뿐인 축하는 가볍다 느껴졌는지 그와 함께 보내는 선물들이 내게는 부담이었다. 계획하지 않은 물건들이 내 집에 들어와서 공간을 차지한다는 것이 —선물받은 입장에서는 무척 감사하지만—편한 상황은 아니었다. 뒹굴 수 있는 공간이 물건들로 한 뼘 작아진다는 것은 특히나 오피스텔에 사는 나에게는 은근하고 묵직한 압박이다. 게다가 나는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어지간한 물욕도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며 생일 선물을 받지 않아야겠다고 결심을 굳혀가던 와중, 이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개인이 가지고 싶은 물건 혹은 원하는 금액만큼 펀딩을 열어 친구들이 메시지와 함께 후원해 주는 서비스. 그리고 나는 이 플랫폼을 통해 돈을 모아 기부를 하고 싶었다. 이유는 생일에 공개 예정(아무도 안 물어봄).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은 고단함에 부쳐 스스로가 갖고 싶은 것도 헤아리지 못할 지경에 있던 내가 유일하게 처음 떠올린’받고 싶은 생일 선물’이다.
여기에 여러분이 보태주신 나를 향한 뜨거운—혹은 미지근한?— 축하는 수수료를 제외한 전액 컴패션에 기부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제외한 어떠한 형태로도 생일선물을 받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유난이라고 욕하겠지만, 그래도 내 의도를 선의로 해석해 주는 사람들을 믿는다. 나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거창한 목표를 갖기엔 참 작은 인간이다. 그렇지만 내가 늘 견지하는 바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막상 이래 놓고 내년에는 물욕이 다시금 차올라 선물을 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2023년의 김지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글이 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글을 다 읽어준 친구들, 혹은 읽지 않았지만 축하를 보내준 친구들 모두 고맙다. 나는 당신들의 온기를 빌어 하루씩 삶을 꾸려나간다.
